“미나리는 어디서든 잘 자라” 낯선 미국, 아칸소로 떠나온 한국 가족. 가족들에게 뭔가 해내는 걸 보여주고 싶은 아빠 ‘제이콥'(스티븐 연)은 자신만의 농장을 가꾸기 시작하고 엄마 ‘모니카'(한예리)도 다시 일자리를 찾는다. 아직 어린 아이들을 위해 ‘모니카’의 엄마 ‘순자’(윤여정)가 함께 살기로 하고 가방 가득 고춧가루, 멸치, 한약 그리고 미나리씨를 담은 할머니가 도착한다. 의젓한 큰딸 ‘앤'(노엘 케이트 조)과 장난꾸러기 막내아들 ‘데이빗'(앨런 김)은 여느 그랜마같지 않은 할머니가 영- 못마땅한데… 함께 있다면,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하루하루 뿌리 내리며 살아가는 어느 가족의 아주 특별한 여정이 시작된다!
영화 <미나리> 리뷰
최근 에미상을 석권한 <성난 사람들>에 출연한 스티븐 연 배우는 타고난 연기자다. 그는 영화 ‘버닝’에서 특이한 취향을 가진 부자를 고풍스러우면서도 저속하게 표현해냈다. 그는 드라마 ‘성난 사람들’에서 대놓고 저속한 ‘대니’역을 맡았다. 울분에 가득 찬 캐릭터를 표현해내는 그의 연기는 거칠면서도 섬세하다. 대니가 처한 어려운 현실은 구구절절한 배경 설명이 아니라 그가 표현해내는 찌질함에서도 묻어난다. <성난 사람들>의 인기에 힘입어 그의 전작인 <미나리>를 살펴봤다.
2021년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받은 정이삭 감독의 작품 <미나리>는 생존을 위해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간 가족이 미국에서 적응해 살아가는 내용을 담은 영화다. 그들은 미나리라는 식물처럼 끈질기게 생존하면서도 쓰임새 있는 삶을 살길 원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영화는 생존을 위해 효율을 추구하는 한 가족이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모습을 담았다.
<미나리>를 보면서 가장 먼저 생각난 건 이창동 감독이다. <버닝>의 스티븐 연이 주연을 맡았을 뿐만 아니라 할머니라는 소재로 가족 이야기를 이끌고 나간다는 점에서 <시>와 닮았다. 게다가 시퀀스마다 비유와 상징을 적절히 녹여 관객들에게 고민을 던져준다는 점도 비슷하다. 그런 점에서 정이삭 감독의 전작들과 이창동 감독의 작품을 대조해보는 것도 재미가 있을 것 같다.
영화 속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소재는 물이다. 영화 <미나리>는 시작부터 끝까지 물을 찾는 이야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 속에는 다양한 물이 등장한다. 제이콥(스티븐 연)이 농사를 짓기 위해 그토록 찾아 헤매는 물부터 데이빗(앨런 김)이 자주 마시는 마운틴듀, 할머니 순자(윤여정)가 한국에서 가져온 한약까지, 영화는 반복해서 물을 소재로 사용한다. 물이 곧 생명을 상징한다면 결국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생존을 논한다고도 볼 수 있다.
생존이라는 가치는 가족 안에서 의미가 있다. 영화 후반부에서 제이콥이 애써 기른 농작물을 다 불태워버리는 것도, 모두가 함께 새로운 물을 찾아 재출발하는 장면도. 자칫 떨어져 살아갈 수도 있었던 가족을 한곳에 묶어놓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 결국 얕은 성공보다 깊은 가족애가 더 중요하다는 말 아닐까.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것은 인물을 드러내는 방식이었다. 특히 제이콥의 경우 가장으로서의 부담감을 크게 느끼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는데 이러한 상황을 추측할만한 연출이 좋았다. 병아리 분류공장에서 효율성을 강조하며 폐기되는 수평아리들을 이야기할 때나, 장남으로서 가진 돈을 다 줬다고 이야기하는 부분 등 흔히 가부장제 사회에서 살아가는 남성의 고충을 잘 드러냈다.
반면에 모니카(한예리)나 할머니 순자의 캐릭터는 다소 구체성이 떨어진다. 예를 들어 왜 모니카가 아칸소를 떠나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는지 등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각본도 다소 아쉽다. 물이라는 소재가 나올 때부터 불이 등장할 것이라는 건 충분히 짐작 가능하고 특히 할머니가 혼자 남겨져 무엇인가를 소각하고 있을 때부터는 앞으로의 전개가 쉽게 그려진다.
카메라 움직임과 같이 연출에서는 신경을 꽤 많이 쓴 듯하다. 제이콥의 심경변화를 보여줄 때는 마치 뮤직비디오를 찍는 것 같이 로우 앵글 쇼트가 등장하는데, 이러한 카메라 연출은 등장인물의 불안한 마음을 제대로 드러내 준다. 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드러나는 딥포커스, 핸드헬드 등 기법도 적절하게 사용돼 몰입감을 높였다.
영화 <미나리>가 많은 사람의 공감을 받는 이유는 보편성에 있을 것 같다. 생존이라는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 가족과의 행복한 시간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영화에 몰입하고 자신의 현실과 비교해보기 때문이다. 영화 속 현실감 높은 부부싸움 장면이나 생계의 어려움이 이러한 공감대 형성을 더욱 쉽게 만들어준다. 결국 제이콥과 모니카도, 또 십자가를 지고 교회로 향하는 폴(윌 패튼)도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하나의 그룹을 형성한다. 영화를 보는 관객도 같은 그룹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영화는 짠하거나 안타까운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상적이었던 윤여정 배우의 연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윤 배우는 낯선 미국 땅을 방문한 할머니라는 다소 평범해 보이는 설정 속에서도 자기만의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낯선 환경에 주눅 들어있는 할머니가 아니라 그 속에서 자신만의 삶을 찾아 움직이는 모습은 영화의 제목 <미나리>가 말하고자 하는 바와 똑 닮았다. 영화의 분위기를 잘 녹여낸 연기를 보여준 윤 배우의 모습에 박수를 보낸다. 한예리 배우는 감정을 억누르는 듯 연기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고, 스티븐 연 배우는 정말로 가장의 무게를 짊어 진 것처럼 연기했다. 이처럼 반짝이는 캐릭터들이 영화의 몰입감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본다.
세탁소를 운영하지만 늘 빚에 시달리는 ‘상현’(송강호)과 베이비 박스 시설에서 일하는 보육원 출신의 ‘동수’(강동원). 거센 비가 내리는 어느 날 밤, 그들은 베이비 박스에 놓인 한 아기를 몰래 데려간다. 하지만 이튿날, 생각지 못하게 엄마 ‘소영’(이지은)이 아기 ‘우성’을 찾으러 돌아온다. 아기가 사라진 것을 안 소영이 경찰에 신고하려 하자 솔직하게 털어놓는 두 사람. 우성이를 잘 키울 적임자를 찾아 주기 위해서 그랬다는 변명이 기가 막히지만 소영은 우성이의 새 부모를 찾는 여정에 상현, 동수와 함께하기로 한다. 한편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 형사 ‘수진’(배두나)과 후배 ‘이형사’(이주영). 이들을 현행범으로 잡고 반 년째 이어온 수사를 마무리하기 위해 조용히 뒤를 쫓는다. 베이비 박스, 그곳에서 의도치 않게 만난 이들의 예기치 못한 특별한 여정이 시작된다.
영화 <브로커> 리뷰
영화는 어려운 형편에서 홀로 살아가는 미혼모 ‘소영’(이지은)이 근처 교회에 설치된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버리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곳에는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아이를 몰래 빼돌려 다른 사람에게 판매하는 상현(송강호)과 동수(강동원)가 있다. 두 명의 아기판매상은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소영의 아기 ‘우성’을 데리고 상현이 운영하는 세탁소로 간다. 하지만 다음 날 교회에 소영이 다시 찾아오고, 발각 위기에 놓인 두 사람은 우성을 판매하면 돈을 주겠다며 소영을 설득해 함께 아이를 구입할 ‘고객’을 찾아다닌다. 한편 상현의 뒤를 쫓던 수진(배두나 분)과 이형사(이주영 분)는 범죄현장을 덮치기 위해 이들을 따라간다.
일본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평소 가장 좋아하는 감독이지만 <브로커>의 작품성은 조금 아쉽다. 고레에다 감독의 장점은 은유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브로커>의 경우 영화가 대부분 직유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뚝뚝 끊어지는 서사의 흐름이나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짐작이 되는 이야기 구조도 아쉬웠다. 과거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이나 <어느 가족>에서 보여줬던 훌륭한 쇼트들도 이번 작품에서는 크게 찾아볼 수 없었다.
인물 설정도 썩 만족스럽지 못했다. 가령 동수의 경우 보육원 출신이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큰 특징을 갖지 못한 인물로 묘사됐다. 동수라는 캐릭터 자체가 납작한 캐릭터로 묘사되다 보니 동수를 제외하고서도 스토리 전개가 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캐릭터 하나하나의 특징을 살리는 감독의 장점이 발휘되지 못해 조금 답답하게 느껴진 대목이다.
<브로커>는 피가 섞이지 않은 가족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는 점과, 버려지고 상처 입은 사람들이 모여 겪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어느 가족>과 유사하다. 하지만 전작과 비교해보면 감독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비혈연 가족도 즐겁게 살 살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어느 가족>의 경우, 등장인물들이 함께 살게 된 계기나 살아가면서 즐겁게 지내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들은 만남은 어색해 보였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을 전달했고, 이내 동화되는 모습을 보여줬다. 동거인에서 비혈연 가족이 되는 모습을 카메라로 차근차근 담아낸 것이다.
하지만 <브로커>의 경우 이러한 과정이 많이 생략되어 있다. 영화 속 이야기 구조는 대부분 아이를 판매하러 가는 과정에 집중됐으며, 그 속에서 아기인 우성과 소영 일행의 정서적 교감은 큰 비중을 차지 않았다. 이 때문에 브로커들이 경찰에 잡혀가고 우성이 행복해지는 모습이 상대적으로 감동적이지 않았다. 물론 감정 교류의 대상이 갓난아이라는 점에서 차이는 있겠으나 <어느 가족>의 할머니(키키 키린)와 아빠(릴리 프랭키)처럼 감정선을 깊게 만들어내는 인물이 없었다는 점이 아쉽다.
가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브로커>와 <어느 가족>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이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가족>에서 엄마(안도 사쿠라)가 피가 섞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신의 가족을 폄하하는 경찰에게 격렬하게 분노하는 장면에는 이러한 배경이 숨어있다. 가족이라는 집단을 이어주는 고리는 피가 아닌 마음인 셈이다.고레에다 감독은 <어느 가족>과 마찬가지로 <브로커>에서도 주어진 가족이 아니라 만들어내는 가족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캐릭터 사이의 유대관계가 끈끈하지 않다 보니, 감독의 메시지는 조금 불분명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브로커>로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은 송강호 배우는 이번 작품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인다. 그는 음침하면서도 밝고 억척스러우면서도 모자란 구석이 있는 상현이라는 인물을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2092년, 지구는 병들고 우주 위성궤도에 인류의 새로운 보금자리인 UTS가 만들어졌다. 돈 되는 일이라면, 뭐든 하는 조종사 ‘태호’(송중기) 과거, 우주 해적단을 이끌었던 ‘장선장’(김태리) 갱단 두목이었지만 이제는 기관사가 된 ‘타이거 박’(진선규) 평생 이루고 싶은 꿈을 가진 작살잡이 로봇 ‘업동이’(유해진). 이들은 우주쓰레기를 주워 돈을 버는 청소선 ‘승리호’의 선원들이다. “오지 마! 쳐다보지도 말고, 숨도 조심해서 쉬어. 엉겨 붙을 생각하지 마!” 어느날, 사고 우주정을 수거한 ‘승리호’는 그 안에 숨어있던 대량살상무기로 알려진 인간형 로봇 ‘도로시’를 발견한다. 돈이 절실한 선원들은 ‘도로시’를 거액의 돈과 맞바꾸기 위한 위험한 거래를 계획하는데… “비켜라, 이 무능한 것들아. 저건 내 거다!”
영화 <승리호> 리뷰
‘언젠가 승리의 발판이 될 최초의 패배’
씨네 21의 김철홍 평론가는 조성희 감독의 영화 <승리호>를 이렇게 평했다. ‘한국 최초의 우주 SF 영화’라는 메시지를 표방한 <승리호>가 완벽하진 않지만 유의미한 성과를 냈다는 점에서 나온 표현이다. 제작비, 기술력 등 한국에서 영화를 만드는데 생기는 제약을 고려했을 때 <승리호>는 꽤 잘 만들어진 작품이 분명하다. 하지만 조금 더 잘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승리호>는 이미 심각하게 오염되어버린 2092년의 지구를 배경으로 한다. 제임스 설리반이라는 엘리트는 생존을 위해 우주 바깥에 UTS라는 인공 행성을 만들고 함께 살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들을 초청해 UTS에 정착할 수 있도록 한다. 가난하거나,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지구에 그대로 남아있거나 우주 쓰레기 청소부가 되어 힘겹게 생활을 이어나간다. 우주 쓰레기 청소부 ‘승리호’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이 영화의 전체 줄거리다.
이 영화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참신한 진부함’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먼저 우리나라 영화에서는 최초로 시도되는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참신성이 뛰어나다고 평가할 수 있다. 또 CG 등을 활용한 영상미도 과거 어느 영화보다 높은 수준을 보인다.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는 더없이 적합한 영화인 셈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몰입감을 떨어뜨리는 아쉬운 연출이 영화의 큰 오점으로 남았다. 가령 태호(송중기 분)와 순이(오지율 분)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흰색 색감을 활용해 작위적으로 표현한 부분 등이 그렇다. 이외에도 스토리 전개에서 태호의 과거 회상신을 너무 길게 가져간 점도 지루함을 더했다. 플롯설정은 감독의 재량이지만 어색한 플롯설정이 영화의 설득력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승리호>의 경우 여러 클리셰가 반복되면서 스토리 진행에 있어 의문점이 많이 남았다.
대표적인 것이 설리반이라는 빌런의 캐릭터 설정, 후반부에 등장하는 우주 청소부들끼리 협력 등이다.
먼저 설리반의 경우 애매한 캐릭터로 등장한다. 천재적인 두뇌를 지녔고 150년 이상 삶을 살아온 그가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해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다는 설정은 다소 설득력이 떨어진다. 또 그는 흥분할 때마다 혈관이 부푼다는 설정을 하고 있는데, 이게 왜 그런 건지에 대한 배경설명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영화 속에서는 설리반의 존재보다 ‘무인격추기’가 더욱 더 무섭게 비치기도 한다.
우주 청소부들의 협력도 다소 억지스러운 측면이 있다. 영화 초반 ‘승리호’의 팀원들은 다른 우주 청소부들이 노리고 있던 쓰레기를 탈취하는 등 다소 거친 이미지로 그려진다. 다른 우주 청소부들의 반응을 보면 그런 행위를 자주 해온 것처럼 비친다. 하지만 그들은 마지막 장면에서 ‘지구를 지켜야 한다’는 장 선장(김태리 분)의 말에 급작스레 마음을 바꾼다. 그 장면은 꽤 이질적이어서, 그들의 모습이 꼭 ‘<어벤져스>의 마지막 장면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로봇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방금 지적했던 두 부분이 플롯설정의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 영화를 보면서 영화 속에서 가장 마음에 든 포인트는 의외로 이성애 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난 영화를 그려낸 모습이었다. ‘가족’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스페이스 오페라라는 장르적 특징과는 거리가 좀 멀어 보일 수도 있지만, 한국형 SF라는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조성희 감독의 섬세함은 의외의 캐릭터를 묘사하는 데서 찾아볼 수 있었다. 남성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높은 업동이(유해진 분)를 여성 로봇으로 묘사한 것뿐 아니라, 여성의 외모로 변신을 한 업동이에게 목소리를 바꾸지 말라고 하는 장면을 통해 이 사실이 잘 드러난다.
남, 여의 구분이 뚜렷한 이성애 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트랜스젠더까지 아우르는 설정이 배려 깊다. 또 꽃님(박예린 분)이와 가족이 된 승리호 식구들의 모습이 자연스러운 것도 이와 유사한 이유다. 정상 가족 프레임에서 벗어나 혈연으로 엮이지 않은 가족도 화목하게 지낼 수 있다는 점을 시대상을 반영해 잘 표현해냈다.
‘언젠가 승리의 발판이 될 최초의 패배’
이 수식어를 만족하기 위해 한국 SF 영화가 앞으로 해야 할 것은 많다. 가장 필요한 것은 캐릭터를 조금 더 입체적으로 그려내는 것이다. 장 선장, 태호, 타이거 박(진선규 분), 꽃님 등은 섬세한 캐릭터 묘사가 뒷받침된다면 하나하나 특색 있는 캐릭터로 충분히 자리 잡을 수 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등 할리우드 영화의 히어로가 영화 바깥에서도 인기를 끄는 이유는 그들이 가진 ‘개성’이 잘 드러났기 때문이다. 신파적인 스토리가 아닌, 개개인의 능력과 다층적인 사건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이러한 캐릭터 묘사가 뒷받침된다면 앞으로 한국 SF 영화는 충분히 기대해볼 만 할 것 같다.
그 여름, 나에게도 친구가 생겼다… “내 마음이 들리니” 언제나 혼자인 외톨이 선은 모두가 떠나고 홀로 교실에 남아있던 방학식 날, 전학생 지아를 만난다. 서로의 비밀을 나누며 순식간에 세상 누구보다 친한 사이가 된 선과 지아는 생애 가장 반짝이는 여름을 보내는데, 개학 후 학교에서 만난 지아는 어쩐 일인지 선에게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다. 선을 따돌리는 보라의 편에 서서 선을 외면하는 지아와 다시 혼자가 되고 싶지 않은 선. 어떻게든 관계를 회복해보려 노력하던 선은 결국 지아의 비밀을 폭로해버리고 마는데… 선과 지아. 우리는 다시 ‘우리’가 될 수 있을까?
영화 <우리들> 리뷰
초등학교 4학년인 선(최수인)은 단체 운동경기를 할 때조차 같은 편이 없는 외톨이다. 친구가 필요한 선은 전학 온 교실을 서성이던 같은 처지의 지아(설혜인)와 만나고, 둘은 서로의 결핍까지 공유하는 가까운 사이가 된다.
하지만 이들 앞에는 학교에서 벌어지는 생존경쟁이 기다린다. 친구와의 관계로 서열이 뒤바뀌는 전쟁터에서 두 사람의 비밀은 서로를 공격하는 무기가 되고 뒤틀린 관계는 흉터를 남긴다. 영화 <우리들>은 교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어린이들의 내밀한 이야기를 담았다. 영화는 어른이 배제된 세계를 그려내면서 자칫 사소해 보일 수 있는 아이들의 감정변화를 돋보이게 했다.
영화는 철저하게 어린이들의 시선에서 생존경쟁을 그려낸다. 어른들은 등장하지 않거나 무능력한 사람으로 묘사된다. 영화 초반, 보라(이서연)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선이가 찾은 낯선 집에서 카메라는 집주인 얼굴 대신 실망한 선이 얼굴을 담아낸다. 키가 작은 배우들에게 맞춰 카메라를 낮게 세팅하는 것은 물론이고 어른들은 주로 앉은 채로 주인공과 대화를 나눈다.
학교폭력 문제를 해결해야 할 선이의 담임 선생님은, 친구들의 관심을 받지 못해 불안해하는 선이를 보고서도 어깨에 살짝 손을 얹을 뿐 별다른 해결책을 주지 못한다. 선이와 지아가 싸웠을 땐 “말을 해야 선생님이 알지”라고 되려 핀잔을 준다. 돈이나 가족의 사랑처럼 갈등의 씨앗이 된 결핍의 원인 제공자는 모두 어른들이지만 어른들은 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
어른이 배제된 영화 속에서 갈등은 온전히 아이들이 해결해야 할 몫으로 남는다. 감독은 은유적인 표현방식을 사용해 감정전달에 서투른 어린이들의 모습을 묘사한다. 김밥, 손톱 같은 소재가 대표적인 예다. 선이가 지아를 생각해 엄마에게 요구한 오이김밥은 역설적으로 선이와 지아의 관계를 어긋나게 만든다. 선이와 선이 엄마와의 친근함이 부러웠던 지아는 선이네 집 선풍기 앞으로 가 “덥다”며 은근한 핀잔을 준다. 봉숭아 물을 들인 손톱을 매니큐어로 덧칠하고 다시 그 속에서 희미한 봉숭아 물 자국을 발견하는 선이를 담은 장면으로 아이들만의 세계가 작동하는 방식을 표현했다.
장면 하나가 기억에 남는다. 시험에서 1등을 놓치지 않던 보라가 처음으로 지아에게 1등을 뺏겨 슬퍼하는 장면이다. 보라는 학원에서 울고 있는데 보라 어머니는 선생님에게 보라가 학원에 왔는지 묻는다. 자식의 마음도 몰라주는 보라 어머니의 모습을 통해 보라의 감정이 설득력을 얻는다.
이렇듯 감독은 의도적으로 어른의 존재감을 지워 관객이 어린이에게 집중할 수 있게 한다. 자칫 사소해 보일 수 있는 아이의 감정에 무게감을 더하는 방법이다. 감독이 보인 ‘배제의 미덕’ 덕분에 관객은 작품에 더 몰입할 수 있다. 울고 있는 보라의 모습을 통해 보라가 그동안 느꼈을 설움을, 지아가 금을 밟지 않았다고 얘기하는 선이의 모습에서는 우정을 느낄 수 있다.
초고령 사회, 죽음에 대해 생각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 ‘나’를 잃지 않고 인생의 마지막을 향해 가는 법
64세에 전립선암이 전신에 전이되어 시한부 선고를 받은 의사가 본인의 경험과 생각을 편하게 쓴 책이다. 다행스럽게도 항암치료가 잘 맞아 어느 정도 안정된 상태가 되었으나 두세 달 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시간들이 늘 엄습하기에 우리가 매일 보내는 순간들을 어떤 의미로 채워나가면 좋을지, 의사의 경험과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현실적인 노년의 건강 관리 및 죽음을 준비하는 연습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택에서 평온하게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다던 그는 2022년 10월 세상을 떠났다.
목차
1장 전신암과 함께 살아가다 전립선에서 발견된 암이 전신으로 퍼지다 앞으로 3년을 살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 언제 죽어도 괜찮다는 말은 진심일까? 남은 생이 얼마인지 아무도 모른다 죽음을 준비하면서 새로운 취미도 시작해보자 살쪄서 건강해 보이는 암 환자도 있다 굶는 게 편할 때도 있다 죽음의 징조를 미리 알아두자 직접 경험한 임사 체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죽는 게 불행한 일일까? 새로운 치료제에 기대를 걸어본다 삶을 긍정적으로 마무리하자 이상적인 죽음이란 집에서 평온한 죽음을 맞이하려면
2장 죽음을 준비하자 간병인의 부담을 덜어주려면 재산보다는 사람을 남기자 죽음은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가는 것일 뿐 생의 마지막에 찾아오는 고독 적당히 정직한 삶을 살면 된다 죽기 전까지 시간적 여유가 있는 편이 좋다 임종을 지키지 못하더라도 죽음이 곧 끝은 아니다 장례식에 가고 싶지 않은 마음 60세까지 살아 있다는 것에 감사하자 나만의 엔딩 노트로 죽음을 준비하자 심폐소생술을 원하지 않을 경우 이렇게 죽는 것도 인생이다
3장 100세 인생은 행복일까, 불행일까? 손주 세대에게 돌봄 의무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 가족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면 매일 3,800명 정도가 코로나 이외의 사유로 사망한다 노년기 부부의 갈등이 낳은 비극 지중해식 식단의 장점 커피의 효능 나이가 들면 왼손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자 젊은 사람에게도 배울 점이 있다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일상적 행동들 암이나 심장병을 예방하려면 조바심을 버려야 한다 불편함을 감수하는 삶의 이로움 손주를 돌보는 시간은 1주 8시간 이내로 하자 직장인은 두 번 죽는다 약의 종류와 복용법에 관하여 은퇴 후 찾아오는 우울증 은퇴한 남성이 저지르기 쉬운 세 가지 잘못
마치며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느냐가 중요하다
책 속의 문장
제가 암 환자라서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고 여기는 분들도 있겠지만 예전부터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해 종교인, 사회학자, 철학자들과 많은 의견을 나눴습니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된 이유는 7년 전에 대장암으로 고생하다 세상을 떠난 사회학자인 오무라 에이쇼(大村英昭) 선생 때문입니다. 오무라 선생은 늘 ‘멋지게 죽는 법’에 대해 말하곤 했습니다.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으면 잘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이 그의 근본적인 생각입니다. 오무라 선생과 여러 저명한 학자들을 모시고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관한 연구회를 열었습니다. 그 덕분에 ‘죽음’에 대한 공포심이 많이 사그라들었습니다. -〈전립선에서 발견된 암이 전신으로 퍼지다〉 중
엔딩 노트는 자기소개서 같은 것입니다. 죽음을 준비할 때 가장 중요한 일은 예·적금이나 토지·가옥 등의 재산을 정리하는 것입니다. 저는 ‘재산 정리를 아내에게 맡긴다’고 엔딩 노트에 간단하게 적었습니다. (…) 만약 대출을 받았다면 정확하게 금액을 기재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남겨진 가족에게 큰 부담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나만의 엔딩 노트로 죽음을 준비하자〉 중
책 <나는 매일 죽음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리뷰
우리네 삶에서 죽음은 언제나 뒷전이다. 죽음이 고통을 연상시키는 것도 큰 이유겠지만 삶의 마지막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끝’은 누구에게나 아쉬운 법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가족, 마음을 나누던 친구, 회사 동료 등 주변 사람들과 더 이상 소통할 수 없다는 생각은 세상과의 작별을 준비하지 못하게 한다. 겪어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불안감이 눈앞에 놓인 현실을 가려버린 형국이다.
책 <나는 매일 죽음을 준비하고 있습니다>는 전립선암에 걸린 60대 의사가 ‘잘 죽는 방법’에 대해 고민한 기록이다. 짧게는 몇 개월부터 길게는 2~3년에 이르는 시한부 판정을 받은 저자는, 운명의 모래시계가 쏟아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내가 원하는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간병인의 부담을 덜어주는 법, 연명치료를 받지 않기로 선언하기, 죽기 전 물건 정리하기, 엔딩노트 써보기 등 ‘나’를 잃지 않고 죽음을 맞이하는 법에 대해 써 내려갔다. ‘죽을 때 후회하지 않는 사람은 없으므로 후회를 두려워하지 말자’며 올바르게 죽는 마음도 소개한다. 말하자면 ‘죽음 실전서’인 셈이다.
2020년 전립선암을 진단받은 저자는 호르몬 치료를 이어오다 2년 후인 2022년 10월 자택에서 고요하게 세상을 떠났다. 죽음을 준비하던 그는 일본 ‘마이니치 신문’에 쓴 글을 정리해 책으로 만들었다. 지금껏 살아온 삶처럼, 죽음도 내 것인 만큼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말고 스스로 결정하자는 저자의 당당한 태도가 돋보인다.
초고령사회를 앞둔 우리나라에서도 ‘좋은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지길 바란다. 사랑했던 이들과 잘 헤어지는 법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오랜 시간 함께 해온 만큼 헤어지는 일에도 오랜 시간이 필요할 테다. 준비하는 죽음은 준비 없는 죽음보다 슬프지 않을 것이다.
1945년 6월 아우슈비츠 생존자 넬리가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녀의 얼굴은 심하게 훼손된 상태. 성형 수술을 받고 회복된 넬리는 사랑하는 남편 조니를 찾아 나선다. 마침내 재회하지만 아내가 죽었다고 믿는 조니는 얼굴이 변한 넬리를 알아보지 못한다.
영화 <피닉스> 리뷰
아우슈비츠 수용소 생존자인 넬리는 행복했던 일상을 되찾고 싶다. 총상으로 얼굴 전체를 뜯어고치는 ‘재건 수술’을 할 때도 그녀는 예전과 똑같아지길 바란다. 그때의 얼굴로 돌아가야만 회복이 가능할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성형수술은 일종의 심리치료다.
얼굴과 가족을 모두 잃은 넬리는 베를린에서 그의 남편 조니를 다시 만난다. 하지만 그는 그녀를 알아보지 못하고 넬리에게 “넬리 행세를 해달라”는 어처구니없는 제안까지 한다. 남편과의 좋았던 관계 하나만이라도 되찾고 싶은 넬리는 그의 무례한 제안을 받아들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피닉스>는 피해자 넬리가 과거를 받아들이고 상처를 극복해 가는 과정을 ‘빛과 어둠’이라는 시각적 소재를 활용해 강조한 작품이다.
감독은 의도적으로 넬리의 과거를 어둡게 묘사한다. 영화는 어두운 차 안에서 레네가 넬리를 태운 채 운전하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캄캄한 밤, 얼굴 전체에 붕대를 감은 넬리의 목적지는 밝은 햇살이 비치는 성형외과다. 차를 타고 암울한 과거를 지나쳐 온 그녀는 이곳에서 다시 미래를 그릴 수 있다.
이어지는 장면은 수술 후 어두운 병원 복도를 지나 조니의 사진을 발견하는 넬리의 모습이다. 조니가 근무하는 클럽 ‘피닉스’로 향하는 길목에도 짙은 어둠이 깔려있다. 조니와 재회해 일상을 되찾고 싶은 마음과 자신을 배신했을지도 모르는 남편을 잊어야 한다는 넬리의 갈등은 어둡고 칙칙한 반지하 집과 밝고 쾌적한 아파트 사이를 오가며 이어진다.
영화 속 어둠이 넬리의 과거를 의미한다면 빛은 미래다. 조니와의 관계에 심취한 넬리가 팔레스타인으로 떠나지 않겠다고 통보하자 레네는 스탠드 조명을 켜 그녀의 얼굴을 비춘다. 앞서 조명을 켜지 말아달라는 넬리의 부탁을 수용한 것과 달리 이 장면에서 레네의 행동은 단호하다. 넬리가 애써 외면하고 있는 현실을 굳이 보여주겠다는 듯.
조니를 찾아간 클럽 피닉스에서는 ‘불을 켜 어디에 뭐가 있는지 볼 수 있게’라는 가사의 노랫말이 흘러나온다. 이렇듯 현실을 보여주는 빛이 넬리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지만 넬리는 이를 애써 외면한다.
영화는 어둠에서 출발해 빛으로 향해간다. 믿었던 남편이 자신을 배신한 사실을 받아들인 넬리는 마지막 장면에서 노래를 마친 뒤 환한 빛을 향해 걸어 나간다. 현실을 인정하고 미래를 새로 만들어 나가겠다는 의지다. 평소 흰 셔츠를 주로 입던 조니는 이 장면에서 검은 옷을 입고 있다. 눈앞에 서 있는 넬리가 진짜 자신의 아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조니는 과거의 늪으로 빠진다. 어두운 계열의 옷을 즐겨 입던 넬리가 화려한 붉은 드레스를 입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테다.
영화 <피닉스>는 조니가 진짜 넬리를 알아보는지에서 대한 궁금증에서 출발해 넬리가 조니의 본모습을 알아보는 것에서 마침표를 찍는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체는 명암의 변화로 구분된다. “내 사랑, 이미 늦었어”라며 노래하는 넬리의 모습은 전혀 슬퍼 보이지 않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넬리가 부르는 노래는 조니를 위한 것이 아니라 레네에게 바치는 노래기 때문이다. 넬리가 탑승한 기차는 어둠을 헤치고 달려 밝은 빛에 도착했다.
한줄평, 별점
✍️한줄평 : “모든 걸 꿰뚫어 보는 듯한 넬리의 마지막 모습이 압권” ⭐별점⭐ : 3.5/5.0
죽을 위기에서 살아난 ‘존 윅’은 ‘최고 회의’를 쓰러트릴 방법을 찾아낸다. 비로소 완전한 자유의 희망을 보지만, NEW 빌런 ‘그라몽 후작’과 전 세계의 최강 연합은 ‘존 윅’의 오랜 친구까지 적으로 만들어 버리고, 새로운 위기에 놓인 ‘존 윅’은 최후의 반격을 준비하는데,, 레전드 액션 블록버스터 <존 윅>의 새로운 챕터가 열린다!
영화 <존 윅 4> 리뷰
목표를 이루기 위해 무자비하게 돌진하는 존 윅(키아누 리브스)은 네 번째 시리즈에 접어들어서도 그 본성을 숨기지 않는다. 영화 시작부터 수련용 허수아비를 때리며 등장한 그는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망설임 없이 사람들을 총으로 살해한다. 그가 조금의 죄책감도 없이 수십 명, 아니 수백 명을 죽이는 이유는 단지 ‘자유’ 하나다. 그런 그의 ‘무지막지한 액션’을 장점으로 꼽는 사람들이 이 영화의 주요 관객이겠지만 최소한의 개연성을 바라는 관객에게 <존 윅4>는 무모함에 가깝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는 영화를 처음 감상하는 초보 관객에게 매우 불친절하다는 점이다. 전작을 보지 않은 관객들은 존 윅이 왜 이렇게 화가 났고, 이토록 잔인하게 사람들을 죽이는지 전혀 알 수 없다. <존 윅 1>의 경우 아내가 죽은 후 아내가 남긴 강아지를 죽였다는 이유로 적들에게 총을 겨눴다. 강아지의 목숨을 앗아간 대가로 수백 명을 학살한 그의 행동은 설득력을 갖진 못했지만, 관객을 위한 최소한의 성의 표시는 있었다. 하지만 이번 작품의 경우 2시간 50분에 달하는 긴 상영 시간 동안 플래시백을 찾아보기 어렵다. “자유를 달라”면서 타인의 ‘살아갈 자유’를 빼앗는 그가 괴물처럼 보이는 이유다.
그의 ‘묻지마 살인’뿐만 아니라 영화 곳곳에서 등장하는 어색한 설정도 관객의 몰입을 해치는 방해요소다. ‘최고회의’ 사람들이 오사카 콘티넨털을 습격하는 과정을 보자. 방탄 슈트와 수상한 마스크로 중무장한 악당들에게 열심히 총을 쏴대던 존 윅은 악당과 몸싸움을 하다 진열장을 깨뜨린다. 바닥에 쓰러진 존 윅이 손에 쥔 것은 이름도 어색한 쌍절곤이다. 직전 쇼트에서 카메라는 진열장 안에 있는 사무라이 칼 세 자루를 비췄지만 그는 굳이 쌍절곤을 무기로 사용하기로 한 것. 마치 쌍절곤을 꼭 써야 한다는 임무를 받은 듯, 느릿느릿하게 쌍절곤을 휘두르며 악당을 제압하는 그의 모습은 숨 막힐듯 어색하다.
여기에 더해 눈이 잘 보이는 사람보다 공격을 잘 피하는 시각 장애인 킬러, 활을 들고도 화살을 쓰지 않는 ‘아키라’, 사방에서 총알이 쏟아지지만 흠집조차 나지 않는 방탄 슈트를 볼 때 찾아오는 부끄러움은 관객의 몫이다. 총알이 빗발치고 사람이 죽어나가도 놀라는 시늉조차 없이 춤만 추는 클럽 장면은 또 어떤가.
액션 하나만을 믿고 달려온 시리즈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노쇠해 버린 존 윅의 한계로 인해 액션 장면도 아쉬움을 남긴다.프랑스 파리 개선문 일대에서 벌어지는 잘 짜여진 액션신은 관객의 눈을 즐겁게 하지만, 1964년생인 키아누 리브스가 이리저리 뛰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액션 연기를 소화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짠한 마음마저 든다. 그동안 그려져 왔던 인간병기 같은 이미지는 사라지고 은퇴를 앞둔 한 중년 남성의 모습만 남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의 무자비한 싸움은 이번 작품에서 마무리 되는듯싶다. 다음 싸움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존 윅의 은퇴를 허락한다.
실수로 영화감독 함춘수는 수원에 하루 일찍 내려간다. 다음날 특강을 기다리며 들른 복원된 궁궐에서 윤희정이라는 화가를 만난다. 둘은 윤의 작업실에 가서 윤의 그림을 구경하고, 저녁에는 회에다 소주를 많이 마신다. 거기서 가까워지는 두 사람. 다른 카페로 이동한 두 사람은 술을 더 마신다. 거기서 누군가의 질문 때문에 함은 자신의 결혼한 사실을 할 수 없이 말하게 되고, 윤은 함에게 많이 실망하게 된다… 이런 비슷한 만남과 헤어짐의 이야기가 다시 한 번 이어진다. 여자가 더 목소리가 위축되어 있고, 몸도 굽어져 있다. 둘이 돌아다니는 데는 비슷한데, 여기선 남자가 옷도 벗고 그런다.
영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리뷰
모처럼 찾아온 혼자만의 자유를 만끽하고 싶은 중년 남성이 있다. 여자와 대화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던 남성은 한가하게 앉아 바나나 우유를 먹고 있는 아름다운 여성을 발견한다. 먹잇감을 찾은 그는 여자에게 말을 건네지만, 그녀의 반응은 쌀쌀맞게 그지없다. 언변으로는 더 이상 승산이 없을 것 같다고 판단한 그는 자신이 영화감독임을 넌지시 알리며 환심을 산다.
남자의 전략이 통한 걸까. 여자는 그에게 관심을 보이고 기둥 두 개만큼이었던 두 사람 사이의 간극은 금세 허물어진다. 이제부터는 감언이설의 향연. 카페, 식당, 길거리 등 그들이 지나는 곳마다 말 잔치가 이어진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는 여자 하나만을 위해 온전히 하루를 쏟는 ‘춘수’가 ‘희정’을 만나 보낸 일상을 다룬 이야기다. 홍 감독은 똑같은 상황을 변주해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자신의 생각 변화를 드러낸다.
영화는 1부와 2부로 구성된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1부와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린’ 2부다. 춘수에게는 똑같은 하루가 주어지지만 그의 태도는 사뭇 다르다. 1부에서 춘수는 솔직하지 못한 사람으로 묘사된다. 누군가의 관심을 얻기 위해 무엇이든 맞추겠다는 의지다. 희정의 말에 억지로 공감하는 장면이나 그녀의 그림을 맹목적으로 칭찬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희정이 순수한 것이 좋다고 하자 그녀의 작품을 보며 “순수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작업이라 힘들 것”이라고 끼워 맞추는 식이다.
2부에서는 솔직한 춘수가 등장하고 영화는 조금씩 변주된다. 1부에서 희정의 그림을 칭찬하던 춘수는 그녀의 그림에서 외로움과 자기연민이 느껴진다며 거침없이 평가를 해댄다. 1부와 달리 카메라는 그녀의 그림을 담지 않는다. 어떤 그림인지 전혀 상관없다는 듯. 그가 그녀의 작품을 정확히 평가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자신의 느낌조차 다른 사람에게 맞추는 1부의 춘수와 자기 생각을 가감 없이 내뱉는 2부의 춘수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춘수가 여자를 유혹하는 방법을 소재로 한 일종의 사고실험처럼 보인다. 감독은 솔직하지 않은 인물과 솔직한 인물을 나란히 배치하고 인물이 겪는 상황을 가정해 나간다. 감독은 어떤 춘수에게도 해피엔딩을 쉽게 쥐여주지 않으며 어느 것이 옳다는 판단을 내리지는 않지만, 솔직한 춘수를 조금 더 응원하는 듯하다. 마음에 없는 말로 범벅된 칭찬보다 진정성 있는 독설이 오히려 낫다는 태도다.
춘수가 기혼자라는 것과 그가 자신에게 해준 칭찬이 인터뷰에서 여러 차례 써먹은 ‘낡은 말’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1부의 희정은 상처를 받는다. 반면 2부에서는 오래전 결혼한 아내와 자식까지 있다고 밝힌 춘수에게 볼 뽀뽀까지 해준다. 감독의 희망적 사고가 반영된 것 같은 이야기 전개에 불편한 지점이 없진 않지만 솔직함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어 하는 감독의 마음은 영화적으로 잘 표현된 듯하다.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라는 영화 제목은 감독의 생각 변화를 축약한 제목처럼 보인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을 드러내는 모습이 그때는 틀렸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그런 태도가 맞았다는 것. 감독의 생각은 “우린 다 할 만큼만 하고 사는 거예요”라고 말하는 춘식에게서도 읽을 수 있다. 가끔은 술에 취해 옷을 벗는 실수도 하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울면서 매달려 보는 게 우리의 삶이 아닐까. 영화는 벌거벗은 우리 인생을 유쾌하게 그려냈다. 사뭇 진지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영화는 지루하지 않다. 자연인 홍상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많아도 감독 홍상수가 인기를 유지하는 비결은 여기에 있을 것이다.